사라진 순국 성지 '대구 형무소'
2019-07-11 20:55 | 서은진
우리동네 항일이야기 순섭니다.

이육사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대구 형무소에서 모진 고초를 겪고 순국했습니다.

형무소 터는 지금 상가로 변했는데, 서울 서대문 형무소처럼 독립운동의 성지로 다시 기억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서은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제작된 지도를 토대로 대구 형무소 터를 찾아봤습니다.


[지도 CG]
동성로에서 5분 거리인 삼덕교회를 시작으로 봉산육거리, 경대병원 앞쪽까지 직사각형 모양의 한 블록 전체가 대구 형무소 옛텁니다.

1950년대 미군이 찍은 컬러 사진을 보면 붉은 벽돌 담장에 감시탑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구 형무소가 세워진 건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5년이 지난 1910년, 1924년 수용 시설을 축구장 3개 면적으로 확장했고 해방 이후 대구교도소로 사용하다 1971년 화원으로 이전했습니다
[CG]
미국 선교사가 1919년 3월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5천 명이 넘는 조선인이 갇혔다고 기록할 정도로 그 규모가 컸습니다.

한강 이남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의 독립 투사들이 투옥됐고 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권상구/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
"대구에 복심법원이 생기게 되면서 그렇게 많은 재판을 하다 보니 재판을 마치게 되면 자연스럽게 형무소로 수감을 하게 되고 한성, 서울을 제외한 남조선에서 가장 큰 형무소가 아니었을까?" 저항 시인 이육사도 대구 형무소에 투옥됐고 조선은행 대구지점을 폭파한 장진홍 의사,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 등도 이 곳에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브릿지]
형장이 있었던 자리에 지금은 교회가 들어서 있습니다.

교회 안에 설치된 조그만 기념물이 이 곳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었던 형무소 터라는 것을 유일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형무소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지금이라도 순국 성지인 대구 형무소를 기억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대구 형무소도 서울의 서대문 형무소처럼 항일 문화 유산으로 기념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김희곤 경북독립운동기념관 관장]
"독립운동가들을 두들겨 잡았던 또는 독립운동을 했던 현장, 대구 중앙로의 장진홍 의거 현장은 아무런 표시가 없는데 6.25 때 다방을 했던 곳은 근대골목투어에 넣고 있잖아요.

대구시의 문화적인 생각이 어디에 기준을 삼고 있는 가를 보여주는 건 아닌가요"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 모진 옥고를 치른 독립 투사들, 그들이 마지막 투쟁을 벌인 대구 형무소는 후손들의 외면 속에 쓸쓸한 유허로 잊히고 있습니다.

TBC 서은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