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항거해 목숨바친 부부의 비석
2019-08-12 20:54 | 정병훈
1910년 경술국치에 항거하다 옥중에서 순절한 장기석 의사와 그의 비를 지키려고 자결한 부인 박 씨를 기리는 두 비석이 성주에 있습니다.

광복절을 앞두고 이 비석을 통해 가슴깊이 전해지는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정병훈 기자가 소개합니다.

정병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성주군 벽진면 농촌마을 한 쪽에 두 비석을 모신 비각이 있습니다.

해동청풍비와 박유인기열비로 해동청풍비는 1910년 경술국치에 일제에 항거하다 옥중에서 순절한 장기석 열사를 기리기 위해 1936년 세워졌지만 이듬해 일제가 부숴 내다 버린 것을 해방 후 수습해 다시 세웠습니다.

바로 옆 박유인기열비는 해동청풍비를 왜인들이 부수려 하자 구차하게 살 수 없다며 비에 목을 매 자결한 장 의사의 부인 함안 박 씨를 기려 세운 비석입니다.


[박재관/성주군 학예연구사]
"해방되고 나서 파괴된 해동청풍비를 다시 조각을 모아서 비석을 세우고 그 다음에 기열비를 함께 옆에 세워서 두 분의 일제에 대한 저항의 뜻이 보이도록 했습니다."

해동청풍비가 부서진 것을 다시 찾아 세울 때 심산 김창숙 선생이 글을 짓고 백범 김구선생이 글씨를 썼으며, 박유인기열비 또한 한글학자인 위당 정인보 선생이 글을 짓고 김우식 제헌국회 의원이 글씨를 썼습니다.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두 비석의 비문을 쓴 시기가 1946년과 1948년인데 건국원년을 1919년으로 했다는 점입니다.


[곽명창/성주군 문화해설사]
"1919년 3.1 만세운동을 계기로 해서 임시정부가 조직되지 않습니까.

그 때 1919년을 기원으로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해동청풍비는 현재 경상북도 기념물 제 82호로 지정돼 있지만 박유인기열비는 문화재로 등록돼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비석에 담긴 숭고한 정신만은 국보급 그 이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tbc 정병훈입니다.